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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가시고기는 부모의 살을 먹고 자란다

eliotshin 2013. 11. 25. 08:00

"카피는 수치가 아닌 자랑"

2004년 중국의 모 포털을 만났다.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첫 대면을 했다. 상대방 인터넷 포털은, 당시 1위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순위 안에 드는 사이트였다. 각 지역의 수장들이 한번에 모였으니, 우리도 긴장할 만 했다. 우리 서비스를 설명하고, 한국에서의 경험과 실적을 얘기하니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아 됐다, 관심이 많네…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겠어’

결국 우리는 좋은 서비스를 구경시켜줬고, 수개월 후 그 포털에서 독자적으로 유사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러한 중국 파트너들과의 미팅은 한 번이 아니었고, 반복되게 된다. 어쨌든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유력한 포털 사이트와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 좋은 전도사였던 거 같다. 비단, 우리와의 웍샵이 아니더라도, 상대 포털들은 충분히 똑똑해서, 미국 서비스건 한국 서비스건 카피해서 출시했을 거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카피’를 경험한다. 카피를 당했을 때의 심정은, 목욕 중에 내 옷을 누가 가져간 경우와 비슷할 거 같다. 선녀가 목욕할 때 나무꾼이 옷을 가져간 경우는 로맨스라도 있지만, 이건 그냥 빼앗긴 느낌이다. 그렇다면, 옷을 가져간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 부분에서 중국과 한국은 문화적 차이가 있다. 보통, 카피에 대해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고 도덕적 죄책감이나 범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카피를 한다는 건, 그만큼 능력이 있고, 시장에서 실력자임을 검증하는 것이라 한다. 즉, 카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실력이 있으니 원본처럼 만들 수 있고, 더 낫게도 만들 수 있는 거란다. 또한 카피를 당한 쪽도 그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아, 드디어 내 서비스가 시장에서 인정 받았구나’ 라고 생각한다.

 

“청출어람 청어람”

삼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카피한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서 나는 카피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즉, 카피를 통해 더 나은 제품으로 승화하는 ‘창조적 카피’와 그냥 똑같이 베끼다가 2% 부족한 모조품을 만드는 ‘그냥 카피’다. 삼성이 갤럭시S 시리즈와 갤럭시탭을 내면서, 왠만한 나라의 1년 GDP보다 시가총액이 크다는 애플을 견제하고 있다. 터치 방식은 유사하지만, OS도 틀리고 장단점도 확연히 다르다. 비록 최근 소송에서, 엄청난 금액을 배상하라는 판결도 받았지만, 긍정적으로 봐주면 이건 벤치마킹 수준이다. 아주 긍정적으로만 봐주면, ‘청출어람 청어람’이 될 수도 있다.

 

“카피하여 역수출하다”

중국에서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막혀 있다. 이렇게 주요 인터넷 서비스들이 허용되지 않다 보니, 왠만한 서비스의 빌보드차트는 보통 로컬 기업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판 페이스북, 중국판 트위터, 중국판 유투브 등. 재미있는 건, 중국판 트위터는 1위 포털인 시나닷컴이 만들었다. 그런데, 미국 트위터보다 훨씬 좋다. 미국판 트위터는 멀티미디어 기능이 제한되어 있는 다소 답답한 TEXT 서비스인데 반해, 시나 웨이보(WEIBO)는 멀티미디어 기능이 제공된다. 어떻게 보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장점을 잘 결합시켰다. 위 삼성처럼 잘 만든 창조적 카피라 할 만하다. 시나의 웨이보는 3억 명의 중국 유저들이 사용하는 대표적 SNS로 거듭났고, 결국 SNS의 고향인 미국으로 역수출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똑똑한 중국인 개발자들이 세계적인 서비스들을 카피하고 있다. 모조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일부 엘리트들은 더 낫게 창조적 카피를 한다.


“가려가며 보여줘라”

이쯤 되면, 중국의 카피 문화를 욕하기 보다는, 잘 조절하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보여줄 수위를 미리 정하는 거다. 애매하게 정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정해야 한다.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게 하되, 내가 전하는 정보만으로는 카피가 어려운 수준이 적당하다. 업종이나 상품에 따라 많이 다를 거 같다.

이조차 애매하다면, 방법이 없다. 그냥, 진입장벽이 높고 쉽게 카피가 안 되는 경쟁력 있는 서비스, 대박 상품을 만드는 거다. 중국에는 이미 가짜 아이폰도 있고, 가짜 아이패드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짜를 사지 않는다. 진짜와의 차이가 2%가 아니라 50%가 나기 때문이다. 카피하기가 비교적 쉬운 진입장벽이 낮은 제품은 중국에서 롱런하기 어렵다.

 

“거꾸로 카피를 마케팅에 활용하라”

모바일 서비스를 런칭하려면, 처음에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홍보를 할 지 막막하다. 시장이 크다 보니, 광고 비용도 나날이 치솟고 있다. 이 때, 중국의 카피 문화를 역이용할 수 있다. 즉, 모바일 어플을 정식 마켓에 1000원에 올려 놓고, 카피 앱이 무료로 유통되는 불법 마켓에, 스스로 카피 앱을 올린다. 공짜로 푸는 거다. 그러면서 이렇게 홍보한다.
 “정식 마켓의 유료앱을 퍼 온 따끈 따끈한 무료앱을 퍼가세요!”

삽시간에 이용자들 사이에서 퍼져갈 것이고, 수익은 이렇게 확보된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를 붙이거나, 부가 수익 모델을 붙이면 된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카피를 당할 거라면, 스스로 카피를 하는 전략이다.

중국은 시장도 크고 플레이어도 많다. 경쟁도 열 배는 더 치열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카피에 대한 공포감이나 거부감보다는, 이를 자사의 차별화된 상품으로 포지셔닝하는데 역이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