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ampus, Ssync
[프롤로그]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 본문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
“메뉴판이 왜 이리 두껍지?”
중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음식점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의 광경이었다. 중국식당에서는 메뉴판을 들고 있는 손님이 종업원과 뭔가 심도 깊은 토론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주문하는 데 5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저 사람 왜 저렇게 우유부단하지? 그냥 짜장면에 탕수육 시키면 끝 아닌가?’
음식을 어떻게 조리하고, 양은 네 명이 먹기에 어떠하며, 맛은 신맛인지 단맛인지 등 불필요한 질문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내가 두꺼운 메뉴판을 들고 설친다 .
아쉽게도 중국인들이 주로 하는 진지한 질문은 아직 잘하지 못하고, 주로 사진을 보며 재료의 이름을 묻고 주문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메뉴판이 고급스러울수록 음식 가격이 비싸다. 그냥 들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메뉴판을 제시하는 음식점은 분명히 비싼 음식점이다. 대륙의 메뉴판은 일반 책처럼 무척 두껍다. 중국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순서는 렁차이(차가운 음식), 러차이(더운 음식), 탕 및 후식 순이다. 그러나 이것은 격식을 차릴 때 얘기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그냥 러차이 위주로 입맛에 맞는 것을 주문하고, 밥을 추가하면 딱이다.
가끔 손님들에게 “오, 맛있습니다. 지난번에는 근사하긴 했지만 맛이 없었는데, 오늘 시켜주신 음식은 다 맛있네요!”라는 흐뭇한 칭찬도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음식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만 주문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난 짜장면"
중국에도 짜장면이 있을까? 물론 있다. '짜장면'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왔기 때문이다. 처음 메뉴판에서 짜장면을 발견했을 때의 감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미국에서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김치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랄까,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막상 그럴싸한 색깔의 짜장면을 입에 넣는 순간 바로 실망하고 말았다. 달지도 짜지도 않는 밋밋한 이 짜장면이 정말 짜장면인가? 이건 그냥 국수 삶은 거에다가 춘장 조금 얹은 거 아닌가? 오이도 없고 메추리 알도 없었다. ‘이건 무늬만 짜장면이야…’
그랬다.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국민음식 짜장면은 화교들이 만들어낸 기막힌 발명품이었다. 중국에서 만난 짜장면처럼 지난 8년간의 중국 생활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단지 그 시행착오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데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간판 하나 다는 데 두 달 걸린다?”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 역시 나처럼 중국에서 짜장면을 찾는다. 그러다가 내가 중국의 짜장면을 먹고 실망했던 것처럼 짜장면 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실망을 한다. 중국의 문화와 중국인을 제대 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금전적 혹은 심적으로 괴로운 일을 많이 겪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2004년 다음이 중국에 진출했을 때, ‘Daum’이라는 알파 벳 하나하나를 알록달록한 색의 간판으로 제작해야 했다. 중국의 간판 제작 업체에게 50%의 계약금을 주고 일을 맡겼다. 그런데 이 업체가 두 세 번을 시안과 색깔이 완전히 다른 간판을 만들어 가져왔다. 그러면서 ‘이양‘(같다’라는 뜻의 중국말)이라고 우겨댔다.
“주황과 분홍이 어떻게 같다는 겁니까? 정말 이렇게밖에 안 되는 겁 니까? 그러면 나머지 50%의 금액을 줄 수 없습니다”라고 협박까지 했다. 내가 중국어를 잘 못하니, 중문과 출신의 한국인 직원이 고생을 많이 했다.
협박이 좀 심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업체와 연락이 두절됐다. 처음에 는 전화기 배터리가 나갔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 뒤로도 3일 동안 전화기는 계속 꺼져 있었다. 배터리를 3일 동안 안 바꿀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결국 우리는 손을 들어버렸다.
‘도망을 가다니, 치사하게 몇십 만 원 떼어 먹으려고?’
그랬다. 치사해도 절반의 돈은 받았으니 그들에겐 도망가는 게 능사 였다. 전화번호야 길거리에서 얼마든지 새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 중국은 전 화번호를 익명으로 길에서 살 수 있다. 선불제 ‘심카드’라 불린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 간판이 제대로 걸리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다 . 간판이야 그렇다 치고 담당직원의 마음은 그야말로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이 넓은 중국에서 도망간 업자를 어찌 찾는단 말인가?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
우리 인식 속에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중국인은 어떤 이미지일까? 일반적으로, 중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가 가장 많을 것이고, 그 다음은 '짝퉁의 나라', '음식 갖고 장난치는 나라', 심지어 '장기를 매매하는 나라' 등 무서운 이미지가 많이 있는 거 같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위의 짜장면 맛처럼, 모두 틀렸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우리는 중국이라는 빙산의 가장 윗부분만 보고 있다. 바다 속에 잠긴 거대한 본체를 못 보기 때문일 거다. 중국과 한국과 수교를 한지 이제 20년이다. 20년이란 시간 동안 중국의 본체를 보았을 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우리는 중국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였고, 국제 사회에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동안 중국을 등에 업고 발전해 왔고, 세계 경제의 불황 속에서 그나마 경제 발전을 이어가는 몇 안 되는 나라라는 점이다. 중국에 고마워할 일이다. 지금은 중국이 G2라는데, 이제는 미국과 겨루는 대단히 위협적인 나라가 되었다는데, 한국인의 인식에는 정작 변화가 없는 걸까?
"빙산의 본체를 향하여"
처음 상해에 온 손님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여기가 중국 맞습니까? 상해가 서울보다 더 발전했네요.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그 동안 중국을 너무 몰랐네요. 당장 돌아가면 중국어를 시작해야겠어요"
상해는 중국에서도 특별히 다른 도시라, 중국을 대표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이유는 바로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 거 같다.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이 화석처럼 굳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일반화의 오류처럼 무서운 게 없다. 팔색조 중국을 이해하려면, 섣부른 판단이나 섣부른 일반화를 잠시 참아야 한다. 중국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많다. 뭐라 단정하기 참 어렵다.
처음 중국에 오면 엉망진창인 교통문화를 만날 수 있다. 좌회전신호를 받은 차량과 보행신호를 본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움직인다. 사람들이 차를 피해 다녀야 하고, 달려드는 차들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나 역시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는데, 뒤늦게 그것이 중국만의 동시신호라는
걸 알았다. 이런 신호체계에 익숙해지다 보면 오히려 한국에서의 긴 신호대기가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중국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중국식 짜장면에 대한 이해와 같다. 중국인을 좀 더 이해하고, 중국의 사회, 문화, 정치에 대해 알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와 많이 틀린 중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이해하게 될 거다.
이 칼럼에 언급될 에피소우드와 일면들 또한 중국을 일반화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다만, 중국의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들 뒤에 숨겨진 ‘이유들’을 알게 됨으로써,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왜 중국인들은 이기적이지?’, ‘왜 중국인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지 않지?’, ‘왜 중국 사람들은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쓰지?’ 그러한 이해를 통해, 운명적 동반국가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야 할 중국을, 중국인을 비로소 품을 수 있다. 중국을 품음으로써, 나에게도, 대한민국에게도 엄청난 기회가 올 것이다. 중국을 배척하고 등한시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나와 같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바다 밑, 잠겨 있는 본원의 모습들을 들여다 보는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자.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식 자본주의 세계를 삼키다 (0) | 2013.01.17 |
---|---|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축약본 20부 연재 (0) | 2013.01.04 |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책을 내며... (13) | 2012.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