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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

eliotshin 2022. 7. 28. 17:26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서 4:12‭-‬15 KRV

많은 집의 현판처럼 걸려있는 문구의 출처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업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부적처럼 이 문구를 신봉하는데, 사실은 앞뒤를 마저 본다면, 이 단락의 핵심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앞 문장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이다.  

즉, 삶에서 우리는 늘 풍요롭고 안정적인 위치에 있을 수가 없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민의 크기는 더 커질 수도 있고, 행복은 오히려 돈과 반비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번민의 근원은 외적 환경의 변수가 아니라, 사실은 내적 혼돈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더 갖고 싶고, 더 편안하고 싶고, 남들과 비교했을 때 꿀리지 않으려 하고, 그걸 끊임없이 자랑질을 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이런 자랑의 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진을 찍기 위해 특정 장소를 방문하고, 체험을 반복한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정말 우리는 그러한 행위 속에서 '행복한가'?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자족하지 못해서'이다. 끝없는 욕망과 타인과의 비교, 나락으로 떨어진 자존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수십 년 전보다 사회적 부는 증가했고, 인당 국민소득은 혁혁히 올라갔지만, 왜 동네의 정신의학과는 사람으로 넘쳐날까? 왜 직장은 스트레스의 장소이고, 학교는 경쟁과 비교의 장이고, 언제까지 우린 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할까?

그 원인은 내적 불안정이며, 바로 자족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내가 때로는 아주 빈곤한 상황에 처할 줄도 알고, 때로는 풍요로운 상황을 즐길 수도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 상황을 오른 날개 왼 날개, 오른발, 왼발처럼 균형을 잡기 위한 필수적인 인생의 과정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을 거다. 

당신은 지금 인생의 바닥에 있는가? 빈곤의 상태에서 절망감이 든다면, 이제 더 잃을 것이 없고 더 나아지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너무 평안하고 풍요로워서 상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면, 그 또한 인간의 자만이고 위험한 기대일 수 있다. 

저는 어떠냐고요? 사실 저는 최근 20여 년 중에 가장 빈곤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월급 많이 주는 회사만 다니다가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동안 모은 돈을 아끼고 아껴서 조금씩 쓰다가 편안히 죽는 게 제 인생의 목표라면, 그것이 더 비참할 거 같아요. 하나님이 나한테 맡겨주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미루고, 더 풍요로워지면 그걸 하겠다고 얘기하는 건 안 하겠다는 얘기와 같을 테니까요. 

빈곤하지만 풍요로운 멘털 관리로 세상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인생  뭐있나 기냥 가 보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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