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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촌의 꺼지지않는 불빛 본문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중관촌의 꺼지지않는 불빛

eliotshin 2013. 12. 13. 08:00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촌"

 

미국 IT 산업의 심장 실리콘밸리를 가 본 사람이라면, 너른 땅에 퍼져있는 건물들이 캘리포니아 특유의 화창한 날씨와 오버랩되어 추억될 것이다. 중국의 실리콘 밸리는 북경 중관촌에 있다. 북경은 봄이면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 도시라 산호세의 맑은 공기는 없지만, 중관촌 개발자들의 열정만은 미국 실리콘밸리 이상이다. 사무 환경도 쾌적하진 못해서, 절반 이상이 아파트 안에서 작업을 한다. 5인 미만의 영세 스튜디오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거실에 서넛이 모여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제작하고 있다. 그래픽을 하는 친구도 있고, 코딩을 하는 친구도 있고, 스튜디오의 사장은 완성된 제품을 아이패드에 담아 열심히 설명한다. 벤처캐피털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기업가치는 수십억에 이르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중관촌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다. 명문대에서 그만큼 배웠으면 안정된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청년들이다. 사실, 모험을 즐긴다기 보다는 대박의 꿈을 쫓는 무리들이다. 만약에 그들이 만든 게임이나 컨텐츠가 대박을 터트린다면, 평생 동안 일하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자산이 생긴다. 이러한 대박 신화는 신화가 아닌 성공사례가 되어 반복적으로 중국의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다.

중관촌이 심장이라면, 그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대학들이 많다.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명문대들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가 굳이 중관촌(한국으로 치자면 신촌 같은 대학가)에 자리잡은 이유다. 특히 북경대와 청화대 공대를 나온 이들이 주축이 되는 기업이 많고, 작은 스튜디오를 넘어서 중견기업으로 자리잡은 경우는, 해외파 선배가 후배들을 계속 끌어들인다. 대학 동문회 분위기가 되는 경우도 많다. 석사는 기본이고 박사는 옵션이다.

신입사원의 급여는 적게는 5천위앤에서 많게는 2만위앤에 이르기도 한다. 구하기 어려운 모바일 개발자라면 신입이라도 2만위앤은 너끈하다. 아파트 임대료도 버거운 판에 이런 고임금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절반은 현금으로 절반은 지분으로 인정해서 지급한다. 창업자와 꿈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중관촌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평화롭지많은 않다. 아파트 문을 나서면 바로 술집이다. 중국 대학생들은 한국 대학생들처럼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지만, 크고 작은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하다. 술집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꺼지지 않는 아파트의 불빛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중관촌은 그렇게 술과 꿈이 범벅되어 있다.

 

“중국 실리콘밸리에서 본토 실리콘밸리로”

중관촌은 중국 IT의 미래다. 오늘날의 중국의 눈부신 성장을 주도한 청년들이 모두 중관촌에서 자라나고 미래를 꿈꿔왔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인터넷 기업들은 상당수가 이 곳 중관촌에서 시작을 했다. 명문대 졸업생들을 쉽게 유치할 수 있고, 그 시절만해도 임대료가 저렴했었다. 지금은 시설이나 인프라에 비해 임대료가 턱없이 올라갔지만.


이렇게 중관촌의 젖을 먹고 자라 1차 꿈을 이룬 청년들은, 다음 코스로 미국 IT의 심장을 향한다. 중국 실리콘밸리에서 본토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것이다. 스탠포드, 버클리 등 훌륭한 대학으로 두 번째 꿈을 품고 떠난다. 수 년 후 그들이 돌아왔을 때 이미 후배들도 성장했고, 경쟁 기업들도 성장했지만, 이젠 어엿한 상장사의 기업인이 되어 자신의 백그라운드에 한 줄을 더 아로새긴다. ‘스탠포드 MBA’

MBA를 하기 전 중국의 공대생들은 영어에 대한 공포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기에, 대학가 족집게 GMAT 강의를 통해 고득점을 획득하게 되고, 한국인들보다 훨씬 쉽게 명문대 경영대학원에 진학을 할 수가 있다. 한국보다 100배 큰 시장에서 온 엘리트 청년이 수 개월간 벙어리도 지낸들 하등의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듣는 귀가 있고 쓸 줄 아는 청년들은 6개월 즈음 지나면 유창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범의 새끼를 키우다”

미국의 시스템과 미국의 IT를 학습한 중국 엘리트들은 미국 현지 취업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구글, 시스코에도 중국인 취업자들은 많지만, 좀 더 비전이 있고 욕심이 있는 중국인이라면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낫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일까? 초기에는 그랬을 것이다. 낙후된 조국의 IT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선량한 마음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온다. 미국에서 보고 들은 경험 그대로 중국에서 수 년 늦게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한다. 미국에서 취업을 하면 아시아인은 중간관리자가 되는 게 거의 최고의 상황이지만, 중국에서 창업을 하면 그가 중국 구글의 사장도 될 수 있다. 또는 중국 토종 기업의 자존심이 되어, 미국 야후를 집어 삼킬 수도 있으니, 머리가 좀 트인 중국인이라면 굳이 미국 취업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미국 출신의 중국인 엘리트들은 모두 범의 새끼였다. 처음엔 말도 못하고 우유를 먹여야 하는 아기 범들이었는데, 어느새 맹수로 성장해서 중국의 IT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중국의 인터넷기업 미국 기업을 몰아내다”

중국에서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먹통이다. 구글도 홍콩으로 피신을 갔다. 이러한 틈을 타고 중국의 로컬 기업들이 대세를 장악했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자국의 기업들이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 주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문화와 미디어, 인터넷과 관련된 산업은 철저하게 보호 대상이다.

정부 정부의 의도는 보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로컬 기업에게 카피와 새로운 포지셔닝의 기회를 주는 엄청난 금광이다. 똑같이 베낀 서비스가 로컬서비스로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더 낫게 베낀 서비스가 해외로 역수출되기도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시나닷컴이 만든 웨이보(미국의 트위터) 서비스는 멀티미디어 기능으로 더 낫게 무장하여 미국으로 역수출되었다.

결과적으로 중국 인터넷의 모든 카테고리에서 1위 기업은 중국 기업이다. 미국 기업도 한국 기업도 중국 인터넷 기업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손과 발이 묶인 골리앗이 중국에서는 다윗의 돌팔매질에 번번히 쓰러지게 된다.

 

“중관촌의 인재들, 한국 기업에겐 위협이자 기회”


그렇다면 중관촌의 무수한 인재들이 한국기업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당연히 이들은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들이다. 한국 기업들의 컨텐츠와 기술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카피하기도 하고, 로컬화 전략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들은 우리의 엄청난 인재풀이기도 하다. 한국의 취업난을 위해 한국의 인재들을 활용해야겠지만,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인재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과 기업의 비전을 나누어 가진다면, 어느새 우리의 꿈을 함께 이루어갈 훌륭한 자원이 된다.

한국이 비교적 강한 기획력이, 중국의 고급 개발 인력을 통해 중국 서비스로 거듭났을 때 진정한 로컬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made in Korea인지 made in China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중국 유저들이 원하는 진정한 로컬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급 개발자들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어렵고 한국보다 오히려 비싸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한국보다는 인재 풀이 훨씬 크다. 그들은 벤처 정신과 헝그리 정신도 있기에 꿈을 나누어 가질만한 인재들이다.

오늘도 중관촌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